카테고리 없음 / / 2023. 2. 8. 22:36

골프의 기원과 한국 골프의 성장,눈부신 발전

 

코로나 이후 근래  골프가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즐기는 대중적 스포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0명 중의 1명은 골프를 즐긴다는 통계만큼, 비용은 부담이 되나 비즈니스와 유대관계 형성과 유지를 위해 기꺼이 투자한다고 합니다. 그럼 초기 골프의 과정과, 한국 골프의 성장, 그리고 지금의 눈부신 발전을 알아봅니다. 

 

골프의 기원

골프의 기원은 굽은 막대기와 새의 깃털을 채운 가죽 공으로 경기하던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날과 같은 골프경기는 15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하였습니다. 1575년 스코틀랜드의회는 골프에 너무 열중하여 국방을 위한 활쏘기훈련을 소홀히 한다 하여 골프 금지령까지 내렸으나 점점 번성하여 왕후나 귀족들도 흥미를 가지고 골프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 뒤 1754년 22명의 귀족들이 모여서 세인트앤드류스 골프클럽(Saint Andrew Golf Club)을 형성하였고, 1834년 윌리엄 4세가 세인트앤드류스 골프클럽에 로열앤드에인션트 골프클럽(Royal and Ancient Golf Club)이라는 명칭을 붙여줌으로써 이 기관은 영국 전역의 골프 클럽을 통합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13개 항목의 골프 규칙이 성문화되었습니다. 1860년 처음으로 전 영국 오픈 선수권대회가 프레스트 위크 코스에서 개최되었고, 19세기 후반, 골프는 미국으로 건너가 큰 인기를 얻었으며 , 1898년에는 심이 고무로 된 공이 나와서 공이 날아가는 거리가 길어졌습니다. 그 이후 골프경기는 1920년대에 유명한 아마추어선수 보비 존스와 프로골퍼 윌터 헤이건의 출현으로 주요 스포츠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뒤 뛰어난 골프 선수들이 대거 나타나면서 더욱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미국의 선수들이 국제 골프경기대회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렸으며, 그 이후 꾸준히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력 있는 선수들이 나타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골프 선수로는 미국의 벤 호건, 타이거 우즈, 샘 스니드, 아널드 파마, 잭 니클로스, 리 트레비노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그 노먼, 영국의 닉 팔도, 독일의 베른하르트랑거, 짐바브웨의 닉 프라이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니 엘스, 일본의 아오키 이사오 등이 있습니다.

 

 한국골프의 성장과정 

우리나라에 골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00년경입니다. 1940년, 일본에서 발간된 <조선골프소사>에 '한국 최초의 골프는 영국인에 의해 1900년 원산 세관구내에서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21년에는 조선철도국에서 철도국 직영의 조선호텔 숙박객들에 대한 서비스의 일환으로 골프코스를 지을 것을 구상하였고 용산에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인 효창원골프장을 지었습니다. 골프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가자 지금의 군자동에 좀 더 넓은 군자리골프장이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대회는 1925년 청량리에서 개최된 제1회 전조선선수권경기대회이고, 1937년에는 조선골프연맹이 발족되었습니다. 그리고 1941년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연덕춘이 일본 오픈대회에서 26세 나이로 우승하였습니다. 그 뒤 광복 및 6,25 전쟁으로 침체되었던 골프는 1953년 서울컨트리클럽이 재건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골프의 선구자로는 골프를 즐겼던 영왕 이은을 꼽으며, 한국인 최초의 골프 선수로 전 재무부장관 윤호병을 꼽습니다. 1954년에 서울컨트리클럽에서는 제1회 한국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가 열렸고, 1958년에는 제1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가 열리면서 우리나라에 현대 골프의 기틀이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1968년에 한국프로골프협회가 창립되는 등 기반을 잡아가던 우리나라 골프는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부터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입상하면서 괄목할만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6년에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눈부신 발전 

특히, 1990년대 후반에는 박세리, 박지은 등 여성 골프 선수들의 두드러진 활약으로 한국 골프가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1998년대, 미국 투어에 처음으로 데뷔한 박세리는 데뷔 첫 해에 세계 4대 메이저대회 중에서 미국 맥도널드 엘피지에이(LPGA: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 선수권대회와 유에스(US) 오픈에서 잇따라 정상에 오르는 등 총 4승을 거둬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또 1999년에도 총 4승을 거둬 2년 만에 개인통산 8승을 거두는 뛰어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김미현은 데뷔 첫 해인 1999년 9월과 10월에 스테이트 팜 레일클래식 골프대회와 베시킹 클래식 골프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박세리에 이어 신인상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펄신은 프로에 입문한 지 8년 만인 1998년 9월에 스테이트 팜 레일 클래식 골프대회에서 우승했으며, 1999년 10월에는 미국 엘피지에이(LPGA)의 집행위원회 선거에 출마해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임기가 3년인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2002년 5월에는 최경주가 한국 남자 골프 선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피지에이(PGA:Professional Golf Association) 투어 컴팩클래식 골프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또한 1998년 일본 프로 골프 테스트에서 수석으로 통과했던 한희원은 2006년 5월 엘피지에이 토닝클래식 골프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아울러 위성미(미셸 위)는 2006년 5월 한국에서 열린 에스케이텔레콤 오픈 골프대회(남자 경기)에서 컷오프를 통과하면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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